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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미수 1기 윤솔잎 사록

해늘해솔 2017. 8. 3. 18:31
소녀가 태어난 날의 밤하늘과 오늘의 밤하늘은 유사하다. 근본적으로 생과 사가 유사하듯, 소녀의 탄생과 죽음 또한 유사하다. 
 소녀는 자신이 태어난 날 죽는다. 
 소녀는 유리 조각을 들어 손목을 깊게 긋는다. 피가 배어 나오자 양팔을 뻗어 머리 위로 손을 모으고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회전한다. 피가 튄다. 
 소녀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사탕을 꺼내 꽃잎처럼 뿌린다. "아름다운 죽음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어." 
 소녀는 목걸이를 들어 전구를 가린다. "내게 주어진 것은 이 정도." 
 소녀는 장식 사이로 자신에게 닿는 빛을 가늠하며 말한다. 
 소녀는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의자에 앉는다. 발이 허공에 떠 달랑거린다. 소녀는 수면제 몇 알을 삼킨다. 
 가방에서 이어폰과 휴대전화를 꺼낸다. 유튜브에 들어가 '우주의 신비'를 켜고 이어폰을 연결한다. 
 소녀는 잠이 오기 시작하자 소리친다. "나는! 짱! 멋지다!" 
소녀는 의자를 딛고 서서 고리를 매만지며 생각한다. 들렸을까…. 
 소녀는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대하여. 그리고. 
 소녀는 고리에 목을 넣고, 왼발로는 허공을, 오른발로는 의자를 걷어찬다. 

어디선가 비 온 후 소나무 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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